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 발발 (문단 편집) === [[남침유도설]]? ===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콜코 부부이다. 이들은 6.25 전쟁이 이승만과 미국이 북한의 침공을 유도했다는 일명 남침유도설을 주장하였다. 단, 북한이 쳐들어올 걸 뻔히 알면서도 미국에서 수수방관했다는 [[음모론]]은 존재한다. 일명 남침유도설로, 2차대전 중 돈을 신나게 빨았던 미국의 군수산업이 종전이 되자 만든 물건 어디 써먹을 데 없나 걱정이었는데 [[김일성]]이가 뻘짓하는 게 빤히 보이니 낚싯줄을 드리웠다는 것이 그 골자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군비 군수 확장 요청에도 미군은 거절로 일관했고[* 이 시기엔 38선 부근에서 국지전이 일어나던 상태로, 함부로 무기를 쥐어줬다간 확전될 수도 있었고 소련 등 공산권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즉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이야기.] 이에 대해서는 북진을 공공연히 주장한 이승만의 탓이 없지 않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통일을 시도하면 소련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이라 판단한 미국 정부는 이승만의 호전적인 태도에 응해줄 수 없었다. 당시 주한 미대사관 서기관 도널드 맥도널드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북진통일'이라는 이승만 정부의 구호를 한국어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 [[https://youtu.be/ah4gOcVoVwU?t=2247|#]] 그는 미국이 지원을 꺼린 이유가 이승만 정부의 호전적인 성향과 맞물릴 경우 북한을 진짜로 공격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 술회했다. 그리고 애초에 한국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었고 미국 정부와 이승만은 사이가 안 좋았다. 또한 [[애치슨 라인]]에서도 한반도를 제외하면서 [[확인사살]]까지 했다. 이걸 밀고 들어가서 "북한은 미국의 음모에 휘말린 또 하나의 희생자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도 [[나치 독일]]의 책임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음모에 히틀러가 휘말렸을 뿐이라는 주장과 같다. 그러나 불공평한 베르사유 조약이 2차대전의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1차대전까지의 유럽 정치사를 모르고 그 부분만 잘라서 읽은 것. 더군다나 만약에 남침유도설이 맞다면 국군이 박살나는 거야 그렇다 쳐도 '''남침을 유도해놓고 요격에 나선 미군 역시 투입하는 족족 박살이 난데다 이후에도 삽질을 거듭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한다.''' 만약 진짜로 남침을 유도했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력군이 투입되어서 곧장 밀고 올라갔어야 하는데, 현실은 북한군 요격에 나섰다는 게 겨우 1개 대대, 그것도 2개 중대만 있고 대대원 540명에 장교숫자는 겨우 15명 정도밖에 안 되는 찰스 스미스 대대 요거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게 쳐발리고 나서야 윌리엄 딘 장군의 미 24사단이 나섰다. 남침을 유도해 놓고서 남침한 북한군을 때려잡는다는 게 '''1개 대대'''밖에 안 된다면 남침유도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남침을 유도해놓고 병력을 외출,외박,휴가를 자유롭게 보낸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전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 초기에는 미군 병사들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해 한국에 보내지는 족족 [[총알받이]]로 내몰려 무더기로 죽어나갔으며, 개전 초 미군이 북한군의 공격에 연이어 패한 데는 이러한 병력의 자질 문제도 있다. 게다가 군수산업을 돌릴 큰 시장을 미국이 원했다면 차라리 중국의 [[국공내전]]을 장기화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실례로 미국은 [[장제스]]의 군사적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 더불어 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남침유도설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최근에도 남침유도설을 정설로 주장하는 서적이 나오곤 하지만 순전히 책을 팔아먹기 위한 수작일 뿐이다. 일례로 남침유도설을 정론으로 내세운 <한국전쟁의 수수께끼>의 경우 6.25 전쟁 50주년을 노리고 출판했다가 반응이 시들하자 10년 후에 6.25 전쟁 60주년 기념으로 <6.25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살짝만 바꾼 채 신간으로 속여 출판했다. 저자가 이글루스에 스스로 만점을 먹이면서 완벽한 책이라고 홍보하다가 왕창 까이고도 계속 남침유도설이 만고의 진리임을 전파하는 걸 보면 정말 책 팔고 싶은가 보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은 휴전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